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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영화감상문

빛을 보고 싶었던 배우들의 고군분투 '백야행'

by 이와.. 2009. 11. 28.


백야행. 일본 원작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면서 한석규, 손예진, 고수와 같이 내놓라 할 정도의 배우들이 모여들었다. 원작의 인지도와 배우들의 인지도가 어우러지면서 단연 기대작으로 손꼽을만 했던 '백야행'의 영화로서의 모습은 어떠할까.

하연 어둠속을 거닌다는 제목에 담긴 의미처럼 극 중 주요 인물들은 그들의 개인사로 인해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그런 인물들의 심적 고통은 '태양 아래서 걷고 싶어'라고 말하던 요한(고수)의 한마디 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본 영화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은 바로 주인공들의 그런 마음에 동화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아(손예진)가 느꼈을 고통과 요한이 느꼈을 죄책감과 사랑.. 그리고 한동수(한석규)가 가지고 살았어야 했을 죄책감 등등.. 각자 나름의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화 되면서 생략되어진 부분들이 있기 때문일까. 그것들이 어우러졌을 때에 인물들의 깊이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다르게 말하면 인물들이 너무 단조롭고 직선적인 느낌이랄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걸 이어가는 연출 방식은 돋보였지만, 그 와중에서 인물들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이야기의 가장 바탕이 됐을 지아와 요한은 왜 사랑했을까에 대해서는 영화는 그만큼 비중있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 둘이 정말 사랑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지아가 요한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게다가 설렁설렁 일하는 듯 보였던 한동수 형사가 초반에 왜 그 사건에 그렇게 집착했는지도 단순히 형사의 감이라는 것 외에 인물에 대한 다른 설정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야 아들의 죽음이 원인이 되어 그 사건을 쫓는다는 식으로 나오지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요한이 그 현장에 등장할 필요가 없음에도 이야기의 결말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 장소에 등장시켰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 설정도 이야기의 개연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이전 장면에서 그랬듯, 지아를 보호하기 위해 한동수가 사라질 필요가 있었다면, 그런 눈에 띄는 장소가 아닌 조용히 그를 처리하는 것이 요한에게 훨씬 어울렸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굳이 그 장소에 그가 나타나 결말을 지어야 했던 부분이 원작 소설을 접하지 않은 나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영화니깐~'이라고 말해버린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섭섭했던 점들만 쭉 늘어놓았지만 '백야행'이 못 만든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평면적인 인물들을 연기하면서도 빛을 내려 애쓰던 배우들이다. 손예진의 경우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이번 작품에서는 기대 만큼 인물을 잘 살려내지 못 한 듯 하지만, '지아'라는 인물을 외모를 비롯해 그 느낌까지 이렇게 표현해낼 수 있을 여배우가 누가 있을까를 떠올렸을 때 그 이름이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이름 값은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석규 역시 오히려 비슷했던 느낌의 이전 작품인 '주홍글씨'에서의 연기에 비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대 이상이 아니었을 뿐 그 탄탄함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주연 배우들 중 가장 돋보였던 고수의 연기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게 된 고수의 깊은 눈빛과 목소리 등은 개인적으로 백야행이란 영화를 한줄평으로 적었을 때 '고수가 돌아왔다'라고 하고 싶을 정도의 인상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비해 너무 평면적인 느낌이었던 인물들과 그 느낌 그대로 비극을 살려내기 위해 한방향으로 가는 듯한 연출등이 아쉬웠는데, 그 감정의 흐름에 편승한다면 꽤 애달픈 멜로영화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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