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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 하나의 주제에 맞는 옴니버스 장편소설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본문

책이야기/짧은서평

단편소설집? 하나의 주제에 맞는 옴니버스 장편소설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이와 2014. 10. 29. 21:48
여자 없는 남자들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여자 없는 남자들..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이다. 총 7편의 소설이 담겨 있고, 그 중 사랑하는 잠자는 해외 판본에만 특별히 수록된 소설이라고 하니 어쨌든 이야기를 하나 더 읽게 된 독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반가운 책이다. 


각각의 단편 소설들은 당연하게도 그 소설만의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주제는 책의 제목인 '여자 없는 남자들'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도록 이야기가 담겨있다. 쉽게 말해 어느 단편이든,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고 제목을 붙여도 될만큼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단편이 전부 다 그 만의 개성을 품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앞에 실린 4편의 단편에 비해서 뒤이어지는 기노, 사랑하는 잠자는 하루키 특유의 현실과 이공간의 교묘한 결합이 드러나서 읽으면서도 그 안의 담긴 은유를 파악하는 것이 재밌으면서도 어려울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앞의 다른 소설들과 주제가 비슷하니 그것을 참고로 생각해보면 또 독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각각의 단편에서 중요하게 혹은 핵심이 된다고 느껴지는 단어들이 몇가지 있다. 자기분열, 양의적, 공백, 균형.. 등등.. 모든 이야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고, 그들 중 누구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인물들이 자신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면 때문에 힘들어하거나혹은 자신 안에서 자신을 찾지 못하는 공백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런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그들의 심리를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간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여자는 남자들의 현실을 현실답게 살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존재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어딘가로 남자를 끌고 가주는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거나 사라졌을 때 누군가는 그로 인해 파멸하고.. 누군가는 그것에서 균형을 찾아가거나 찾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이해는 하지만 온전하게 공감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각각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하게 변주해서 들려주는 옴니버스 장편 소설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다양한 변주의 의미를 곱씹어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야기 속 누군가 처럼 무덤덤하게 각각의 사연들을 읽어내려가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책이었다. 


한줄평 :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해주는 사실상 옴니버스 장편 소설..


곁다리1.. 6번째로 실린 사랑스런 잠자는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나서 읽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는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벌레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소설은 그 반대로 벌레가 아침에 깨어보니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간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시작하며 그 와중에도 '여자가 없는 남자들'이라는 주제와 걸맞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44쪽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51쪽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 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 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94쪽 '시간의 속도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어긋날 수도 있어.'


97쪽 '언제나 똑같은 달. 두께는 언제나 이십 센티미터.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어. 나는 아키에게 몸을 기대고 있고, 달은 아름답게 빛나고, 우리 단둘이고,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려. 하지만 잠에서 깨면 항상 몹시 슬픈 기분이 들어. 얼음달은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109쪽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168쪽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건 어디에도 없어요.'


187쪽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야. 그런 느낌 속에 잠겨 있는건 무척 멋진 일이야.'


214쪽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


265쪽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보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308쪽 '설령 세계가 지금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나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309쪽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


335쪽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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