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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짧은서평

눈먼자들의 도시

by 이와.. 2006. 12. 23.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네오북)


십년전 쯤 됐으려나. 그때 대학 도서관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꺼내들어서 읽었던 책이 바로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생각해보니 아무 이유도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좀 있어보이는 책을 읽고 싶었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 말고는 이 책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읽게 된거였는데, 그때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 다시 요즘에 와서 화제가 되고 영화화 까지 되고 있길래 다시 한번 책을 읽고 글을 써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들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였다. 한 유명 애니매이션에서 '흐림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겠다'는 내용의 말을 주인공이 하는 것을 보면서 그 대사 자체가 기억에 남기도 했는데, 거기에서의 눈은 우리가 흔히 아는 사전적 의미로서의 눈은 아닐 것이다. 선입견 혹은 편견이나 한쪽으로 치우쳐져 생각하는 것 들이 해당이 될텐데, 눈먼자들의 도시라는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것 역시 지금 말한 내용과 비슷한 듯 하다.

물론 책에서는 사전적 의미로의 눈이 먼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등장한다. 길거리에서 차를 운전하던 한 사람이 갑자기 기존의 실명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실명을 겪게 되고, 그것을 치료하려고 했던 의사를 비롯해 알수 없는 역학관계를 통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실명에 빠지게 된다. 여기까지의 상황만을 두고 보면 눈먼 자들의 도시는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면 어떻게 될까?'라는 발상에서 나온 소설로만 여겨질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런 상황을 통해서 앞서 언급했던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실명이 되는 것을 전염병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정부가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시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증세가 점점 더 퍼져나가자 정부는 아예 그 수용소 관리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여기에서 부터 눈이 먼 사람들 간에 존재하게 되는 새로운 법칙이 만들어지게 된다. 오로지 힘이 중요시 되는 사회. 힘을 가진 자만이 모든 것을 갖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게 되거나 살아가기 위한 양식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야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길거리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개의 먹이가 되고,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 모두가 뒤엉켜 버리다가 죽음을 맞는 상황들 까지도 책 속에서는 잔혹하다 싶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만약 이야기가 이런식으로만 진행이 됐다면 나름 이야기의 주제를 깨달으면서도 더없이 불편했을것 같은데, 그런 불편함을 상쇄시켜주고 주제를 부각시켜주는 인물이 바로 유일하게 실명하지 않은 한 여자이다. 자신의 남편이 실명이 된 이후에 남편이 수용시설로 이송되게 되자, 자신의 남편을 보살피기 위해서 자신 역시 실명이 된 것 처럼 행세하던 그 한 여자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남편을 위해서 한 행동이였지만, 자신의 손이 닿는 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챙겨감으로써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다른 눈먼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을 잃지 않고 그 힘든 상황에서도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된다.

물론 누군가는 그녀가 눈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눈이 멀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절대적인 능력이나 권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외눈박이 세상에서는 눈이 두개인 사람이 비정상이라고 여겨질 수 있듯이, 모두가 눈이 먼 상황에서 혼자만 실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인해 그녀는 더욱더 많은 일들을 해야 했고, 그로인해 막중한 책임감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도 그려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가야할 올바른 길을 갔다는 것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라도 힘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해봤었다. 만약 저런 세상이 오게 된다면.. 그리고 저런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비극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인간은 본성으로만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아닐 것이다. 그것을 책속의 인물들은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리고 불평 불만이 많이 나올 것 같은 현재의 모습 조차도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할 수 있는지를 너무나 고된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지만,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는 그들과 비교해 봤을때 아직도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실명이 되지 않았던 그녀 역시 실명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듯, 우리 역시 좀 더 진지하게 우리의 삶을 대하고 바라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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